프랑스는 본디 갈리아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 기원전 51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하여 로마 제국에 정복당했으며, 이후 로마 문화를 받아들여 급격한 문화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로마 제국이 쇠퇴하자 프랑크족들이 476년에 이주해, 프랑크 왕국을 세우고 번영하였다. 하지만 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카롤루스 대제가 죽은 이후에는 내전이 일어났고 베르됭 조약으로 제국이 분리됐다. 이 나뉜 왕국 중 서프랑크 왕국이 987년에 프랑스 왕국으로 성립되었다. 프랑스 왕국은 필리프 2세의 지배하에 중세 유럽 주요 강대국으로 급부상하였으며, 르네상스 기간에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는 등 더욱 발전하여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강국으로 떠올랐다. 16세기에는 가톨릭과 개신교로 세력이 나뉘어 격렬한 내전을 벌이고, 17세기쯤에야 절대 왕정 치하에서 안정을 찾는다. 특히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 때에는 유럽에서 가장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력한 나라 중 하나였다. 18세기 후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의하여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하며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선사 시대
현재의 프랑스 지방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시기는 180만 년 전 정도이며, 인류는 거친 기후와 빙하, 악독한 날씨 탓에 이보다 더 대규모로 북진하지는 못하였다. 인류는 이 곳에서 수렵채집인으로 살았으며, 동굴에 거주하며 많은 라스코 동굴 벽화와 같은 유적들과 작품들을 남겼다. 기원전 1만년쯤부터는 해빙기가 찾아오며 날씨가 점차 온화해졌고, 기원전 7,000여 년에 이르자 신석기에 접어들었으며 거주하여 정착 생활을 시작하였다. 기원전 4,000년 경부터 야금술이 이 지역에 전파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금, 동, 나중에는 철까지도 제련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기원전 600년경에 포카이아에서 건너온 이오니아인들이 지중해의 해안에 인접한 현재의 마르세유에 그리스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이 시기에는 켈트 족 부족들이 프랑스 동부와 북부로 뻗어나가기 시작하였으며, 얼마 안 있어 프랑스 전역에 골 족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골 족의 개념 또한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는데, 라인강, 피레네산맥, 대서양, 지중해 사이의 지역들에 모여 사는 사람들을 골 족들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근대 프랑스의 경계는 대략 고대 골 족의 영역과 거의 일치하기도 한다. 골 족들은 대체로 풍요로운 문화를 향유하였으며, 남부 지방의 경우에는 선진적인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받아들여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기원전 390년쯤에는 골 족들이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침략해 들어가 로마시를 점령하고 약탈한 일도 있었다. 골 족들은 지속해서 로마를 침략하였고, 기원전 345년에 평화 협약을 맺기 전까지 분탕질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이 협약에도 불구하고 로마와 골 족들은 적대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골 족들은 끊임없이 국경 근처에서 로마를 도발하였다. 기원전 1세기 무렵의 갈리아는 인적 결합체로서의 전 사단인 몇십 개의 키비타스(civitas)라고 하는 정치상의 단위로 나뉘어 있었다. 부족 내부에는 기사 및 성직자 등의 지배층과 무장 능력을 지닌 일반 자유민 외에 노예가 있었으며, 목축과 원시적인 쟁기를 사용하는 농경이 이루어졌다. 로마인들은 이들이 사는 지방을 갈리아라고 불렀다.
삼국 시대
한편 로마에서는 폼페이우스 장군, 대부호 크라수스와 야심 많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제1차 삼두 정치 시대가 개막하였다. 당시 힘이 뻗쳐 오르고 있던 로마는 점차 그 정복의 칼끝을 유럽의 평원 쪽으로 돌리게 되었다. 이에 힘입어 카이사르는 알프스산맥 너머에 있는 갈리아 지역을 "로마화"하여 로마의 힘을 만방에 과시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1세기경에 갈리아 전쟁을 펼쳐 골족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였고, 기원전 52년에 골족의 대장인 웨르킨게토릭스가 로마에 항복하며 갈리아 지방은 로마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기원전 51년에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 지역을 평정하고 로마의 속주로 삼았다. 이때 일어난 로마의 국경 확장으로 인하여 당시 선진적인 로마의 문명이 라인강 지역까지 미치게 되었다. 웨르킨게토릭스가 카이사르에게 참패한 후, 라틴어가 켈트족의 언어를 빠르게 대체하였고, 골 족들은 앞다투어 선진적인 로마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로마에 동화되어 갔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후 로마 제국은 갈리아 속주에 많은 로마식 도시들을 세웠으며, 목욕탕, 포룸과 같은 건물들을 지으며 로마의 문화를 갈리아 지역에 퍼뜨렸다.
기원후 250년경, 갈리아 속주는 라인강을 넘어 쳐들어오는 야만인들의 침략에 신음하였으나, 이후 4세기 초반에 로마 제국이 중흥하는 데에 성공하며 다시 번영을 되찾았다. 312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세웠다. 황제가 직접 나서 기독교를 포교하자 갈리아 지방에서도 빠른 속도로 기독교가 전파되었으며 4~5세기 무렵에는 견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라틴계 교부인 성 제롬은 골 지역이 유일하게 "이교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기원후 4세기에 이르러 로마 제국이 과거의 영광을 잃고 힘이 약해지며 갈리아 지방의 동쪽 경계인 라인강 너머에서 게르만 부족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라인강을 따라 남하하였고, 주로 프랑크족이었던 그들은 5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갈리아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때 갈로-로마 문화가 무너지고 암흑기에 접어든 것으로 회자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하여 프랑크족들이 대거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서구 기독교 문화의 연속성은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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