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

남유럽 이베리아반도 역사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by gaarchive 2024. 12. 17.
반응형



선사 시대
이베리아반도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알타미라 동굴에 있는 벽화는 3만년 전에서 1만 3천년 전 사이에 이 동굴에 살았던 사람들이 그려 넣은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이베리아반도에는 다양한 거석문화가 있었다. 이 가운데 압인 무늬 토기 문화는 연안을 따라 지중해 북부에 널리 퍼져 있었다.

기원전 3천년 무렵 이베리아는 동기 시대를 맞았다. 이베리아를 비롯하여 유럽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비커 문화는 구리를 이용한 도구를 제작하였다.

기원전 1800년 무렵 이베리아의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늘날 알메리아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동기 문화인 로스 밀라레스는 새롭게 들어선 청동기 문화 엘 아르가르에 흡수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초기 청동기 시대 이베리아의 서남단에 국가급 사회조직을 지닌 정착지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 지역의 중심에서 청동 야금술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청동기 후기에 이르러 이베리아 남서부에 타르테소스 문명이 발전하였다. 페니키아는 이들의 언어가 동남부의 이베리아어와 다르다고 기록하였다. 이베리아 동남부에 살던 사람들은 이베리아 인으로 불렸다.

기원전 1천년 무렵부터 중부 유럽에서 켈트족이 이주하여 왔다. 켈트 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고 그 이전에 살던 선주민들은 그와는 다른 어족에 속한다. 켈트족 이후 인도유럽어족의 언어가 이베리아의 대다수 지역에서 쓰이면서 그에 속하지 않는 언어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오늘날 이베리아반도에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지 않는 언어로는 바스크어가 유일하다.

상고 시대
고대 로마가 이베리아반도를 속주로 삼기 이전의 시기를 이베리아의 상고 시대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이베리아반도에는 이베리아인과 켈트족이 여러 부족을 이루며 살았다. 페니키아와 고대 그리스의 선박들이 이베리아에 당도한 것도 이 무렵이다. 페니키아인들은 타르테소스와 이베리아반도 남서부의 풍부한 광석을 거래하였고 기원전 1100년 무렵 오늘날 카디스 지역에 무역 거점 항구 식민지인 가디르를 세웠다. 기원전 8백년 무렵 페니키아인들은 아시리아 제국의 은을 들여와 광물과 교환하였다.

고대 그리스와 카르타고가 페니키아의 지중해 연안 해상 무역을 뒤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해상 무역 거점에 식민지들을 건설하였는데 오늘날 엠푸리에스에 해당하는 엠 포리 온 등이 있었다. 이베리아반도 남부에 여전히 페니키아의 식민지들이 있는 상황에서 고대 그리스의 무역 거점은 동부 지중해 연안에 건설되었고 그곳을 흐르는 에브로강의 이름을 따 이 지역을 이베리아라고 불렀다.

기원전 6세기 무렵 카르타고 역시 이베리아 남동부에 무역 거점 항구를 세웠다. 이 도시는 오늘날 카르타헤나가 되었다.

고대 로마 지배기
고대 로마 시기에 지어진 극장 아우구스타 에메리타
고대 로마의 군대는 제2차 포에니 전쟁 와중에 처음으로 이베리아반도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이 일은 전쟁의 일환이었을 뿐 정복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2백여 년에 걸쳐 이베리아반도의 켈트족과 이베리아 인들은 로마 군대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고 결국 아우구스투스 시기에 이르러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이후 이베리아반도는 히스파니아로 불렸다.

로마의 지배는 6백여 년 동안 지속되었고 그 사이 라틴어가 깊숙이 자리 잡았다. 로마는 히스파니아의 대농장에서 곡물과 올리브를 재배하였고 은을 비롯한 각종 광물을 채굴하였다. 로마의 황제들 가운데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테오도시우스 1세가 히스파니아 출신이었고,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와 마르티알리스, 루카누스 같은 문인들 역시 히스파니아에서 태어났다.

로마 제국 시기 히스파니아에는 루시타니아,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히스파니아 바이티카의 세 속주가 있었다.

게르만족의 이주
서로마 제국이 붕괴하자 게르만족이 서유럽을 거쳐 이베리아반도로 이주하여 왔다. 수에 비족, 서고트족, 반달족, 알란족 등의 부족들이 이주하여 왔다. 먼저 이주해 온 수에 비족이 수에비 왕국을 세웠으나 이후 이주해 온 서고트족에게 멸망 당하였다. 수에비 왕국을 정복하고 세워진 서고트 왕국은 이후 이베리아반도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654년 무렵 서고트 법전을 만드는 등 중세 국가로 발전하였다.

알 안 달 루스
기원후 711년 우마이야 왕조의 아미르였던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이베리아를 침공하여 정복하였다. 이후 이 지역은 이슬람 세계에서 알 안 달 루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슬람의 지배 속에서 이베리아반도의 주민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물라디가 되거나 기독교 신앙을 유지한 모사라베가 되었다. 모사라베는 이슬람 세계의 비이슬람 교도인 딤미로 취급되어 신앙의 유지는 인정되었으나 세금과 사회적 지위에서 차별받았다.

몇 세기에 걸친 이슬람의 지배 아래서 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 사이 이베리아반도 주민의 대부분은 무슬림이었다. 이들은 훗날 무어인이라 불리게 된다. 무슬림 사회는 이베리아 토착의 물라디와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아랍인, 베르베르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슬림이 아닌 딤미였던 모사라베와 유대인들은 별도의 지정된 거주 지역에서 생활하였다.

레콘키스타
이베리아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은 알 안 달 루스 지역을 잃어버린 영토로 인식하였고 718년부터 재정복을 뜻하는 레콘키스타를 벌였다. 레콘키스타는 보통 722년 코바동가 전투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본다. 포르투갈의 레콘키스타는 1249년에 아폰수 3세가 알가르브를 점령하였을 때 완료되었다. 아폰수 3세는 ‘포르투갈과 알가르브의 국왕’이라는 칭호를 쓴 최초의 포르투갈 군주였다. 1492년에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에스파냐 연합왕국이 마지막 남은 이슬람 점령지인 그라나다를 정복하여 레콘키스타는 마무리된다. 그라나다를 정복한 에스파냐는 알람브라 칙령을 반포하여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추방하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