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삼국시대 이래 경주에 도읍을 정하고, 660년 나당연합으로 백제를 멸망시키고, 또 668년에는 고구려를 병합한 뒤 당군을 몰아냄으로써 한반도를 명실공히 통일시켰다. 통일 이전을 고신라, 이후는 통일신라라 부른다. 통일신라는 당나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불교문화가 성했다. 신라의 정치적 ∙ 문화적인 전성기는 8세기이고, 9세기의 쇠퇴기를 거쳐 935년, 왕건의 고려에 의해 멸망당했다.
건축
불교사원은 주로 평지에 세워지고, 가람배치는 쌍탑식으로서 경주의 사천왕 사지, 불국사, 감은사지 등이 대표적인 예. 탑은 대부분이 석탑이고, 경상북도 의성 탑리의 오층탑을 거쳐, 감은사 삼층탑, 불국사의 석가탑과 같은 전형적인 신라식 석탑이 되었다. 9세기의 석탑은 섬세하며 장식적이고, 불상이나 십이지상이 부조된 예가 많고 경상남도 산청 범학리의 삼층석탑, 전라남도 구례 화엄사의 사사 삼층탑 등이 있다. 그 외 경상북도 안동지방에는 전탑이 많고 벽돌로 처마를 받치는 형식이 특색이다. 고승의 묘로 팔각당식의 석조부도도 많고, 현존하는 최고의 예로는 흥법국사염거화상탑이 있다. 석등롱은 화엄사 석등인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형식에서부터 중흥산성의 쌍사자석등롱의 특수형식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고분
고분의 형식은 고신라의 적석목곽분과는 다르며, 고구려 ∙ 백제계의 횡혈식 석실분으로 연도를 설치하여 추장이 될 수 있게 하였다. 경주 일대에는 왕릉의 전설을 가진 석실분이 있고 당나라 능을 모방하여 돌사람, 돌짐승을 세운 것이 있으나, 봉토 밑의 호석에 십이지상부조 또는 환조상을 만들었다.
조각
불상조각은 당나라의 영향을 받았으나 한편에서는 신라 특유의 양식도 시작되어, 8세기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양식이 전개되었다. 사천왕사지 출토의 녹유전상이나 경상북도 군위삼존석굴 등은 7세기 후반의 강한 사실성과 생경함이 남아 있으나, 수많은 석불 중 감산사 석불, 경주 굴불사 석불은 화강암을 사용한 표현에서 신라화가 엿보이고, 이 신라 양식은 8세기 중엽의 석굴암 석조제불에서 정점에 달한다. 그러나 9세기에는 조각도 쇠퇴하기 시작하여 석불은 머리나 어깨가 위축되고 블록 형태가 되고, 화강암의 재질감이 눈에 거슬린다. 9세기에는 철불이 제작되기에 이르렀고, 전라남도 장흥군 보림사의 철조비로자나불 좌상, 강원도 철원군 도피안사의 철조 비로자나불좌상 등의 예가 남아 있으나, 모두 얼굴 모습이 무섭고 8세기 전성기의 전통은 사라졌다.
공예
화장의 유행에 의해 생활자료나 공예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범종, 사리 용기 등 불교관계의 금제 세공에 뛰어난 유품이 있다. 범종은 한국종이라 불리우는 독자적인 형식이고, 정상에 용 모양의 축과 중공의 용이 붙고, 종신에는 상부에 사구의 유곽, 몸통부 동좌에는 비천이 배치됐다. 강원도 평창군 상원사 종, 경주의 봉덕사 종 등이 유명. 또 사리용기는 감은사지 삼층석탑이나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토기는 신라구이가 골호로 많이 남아 있는데 고신라의 토기와는 달리 높은 대가 붙고, 문양도 틀로 누른 각종 고문이 있으며 또한 시유토기도 나타난다. 벽돌이나 와당은 연화문 ∙ 당초문 ∙ 보상화문, 그 외 서수, 전각, 불상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당시의 장식적인 목조건축의 모습이 상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