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의 역사와 기술적 우수성
청자는 인류가 만들어낸 도자기 가운데 가장 뛰어난 그릇 중 하나이다. 송나라와 고려 시대에는 청자가 세계 최고의 도자기로 평가받았다. 일부에서는 청자가 백자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학적으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기술적으로는 백자가 청자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백자는 청자보다 후기에 등장했으며, 도자기 제작 기술이 진보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더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청자를 만든 나라
고려와 송나라를 제외하고는 이처럼 수준 높은 도자기를 제작할 수 있었던 국가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청자를 만든 나라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자기 자체에 대한 개념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도자기는 ‘도기(陶器)’와 ‘자기(瓷器)’로 구분된다. 도기는 붉은색 진흙인 도토(陶土)로 만든 것으로, 500~1,100도의 온도에서 구워진다. 이에 비해 자기는 자토(瓷土)로 만들어지며, 1,300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져야 완성된다. 고온에서 구워진 자기는 도기보다 훨씬 단단하고 가벼우며, 내구성이 뛰어나다. 그러나 과거에는 가마 내부의 온도를 1,300도까지 올리는 데 약 3일이 걸렸으며,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청자의 기원: 인조 옥의 탄생
청자는 옥(玉)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보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옥을 매우 귀중하게 여겼으며, 한국에서도 삼국시대부터 곡옥(曲玉) 형태로 왕관 장식 등에 사용되었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옥을 흙으로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도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재가 푸른색을 띠는 현상을 발견하면서 청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청자는 중국에서 3세기경부터 생산되었으며, 이후 9세기경 선불교 승려들이 차 문화를 확산시키면서 실용화되었다. 고려에서도 이러한 청자 찻잔이 수입되었고, 이를 자체적으로 제작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고려청자의 제작은 중국인 도공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당시 중국이 혼란에 빠지자 고려 조정이 도공들에게 후한 대접을 약속하고 그들을 유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고려의 과거제 도입을 주도한 귀화인 쌍기가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에서는 10세기 후반 개경 근처에서 최초로 청자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청자는 당시 최고의 하이테크(High-Tech) 기술에 속했기 때문에 고려가 자체적으로 청자를 만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일본의 경우 17세기 초 조선 도공들로부터 자기 제작 기술을 전수받은 후에야 본격적으로 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유럽은 18세기 초 독일 작센 지방에서 처음으로 자기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자기를 위한 필수 요소: 자토와 유약
고려청자의 제작에는 뛰어난 기술뿐만 아니라 적절한 원료가 필수적이었다. 자기 제작에 사용되는 자토는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녹지 않고 견딜 수 있는 특수한 흙이다. 일반적으로 금속인 동(銅)도 1,000도 이하에서 녹아내리지만, 자토는 그 이상의 온도에서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자토는 돌가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색깔은 흰색이나 회색을 띤다. 이를 ‘고령토(高嶺土)’라 하며, 중국에서는 ‘카올린(Kaolin)’이라고 부른다.
자토로 만든 그릇에 유약을 입히면 도자기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유약을 바르면 표면이 매끄러워지고, 방수 기능이 생기며, 미적 가치 또한 향상된다. 유약의 기원은 우연한 발견에서 비롯되었다. 가마에서 도기를 굽는 과정에서 나무의 재가 그릇 위에 떨어졌고, 그 부분이 푸른색의 유리막을 형성한 것이다. 이후 도공들은 이를 연구하여 유약을 체계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소나무나 참나무의 재가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녹으면 청색을 띠는 유리막이 형성된다.
고려청자의 독창성: 상감기법과 비색
고려청자는 중국 청자와 비교했을 때 두 가지 요소에서 뛰어난 우위를 보인다. 바로 상감(象嵌) 기법과 비색(翡色)이다.
상감기법이란 기물의 표면을 파낸 후, 그 홈에 다른 재료를 채워 넣는 방식이다. 고려청자의 경우, 학(鶴)이나 꽃과 같은 무늬를 새긴 후 백토(白土)나 자토를 채워 넣어 구웠다. 이를 통해 백토는 흰색으로, 자토는 검은색으로 발색되어 아름다운 대비를 이루었다. 이 기법은 중국 전국시대(기원전 5~3세기)에 이미 금속 공예에서 사용되었으나, 이를 도자기에 적용한 것은 고려가 최초였다.
비색 또한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중국에서도 청자의 색감이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고려청자의 비색은 유난히 신비로운 색조를 자랑했다. 이상적인 비색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유약에 3%의 철분이 포함되어야 한다. 철분 함량이 적으면 연두색이 되고, 많으면 짙은 녹색이 된다. 고려의 도공들은 이러한 색조를 결정짓는 원료의 특성을 철저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독보적인 비색을 구현할 수 있었다.
고려청자의 위상
고려청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실용적인 도자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중국인들은 조선 백자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고려청자는 너도나도 소유하고 싶어 할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는 고려가 기술적, 미학적 측면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도자기 문화를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술력은 조선으로 계승되었으며, 현대 한국에서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서양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배경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고려청자의 제작 기술과 예술성은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유산으로서 여전히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