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지배자들은 철저한 화화사상으로 본래 중국인의 생활철학이 반영된 유교사상을 신봉하였으나, 한편으로 미술에서는 한국인의 가식 없는 천성을 마음껏 표현하였다. 불교는 국정 운영 방침에 의해 배척당하였고, 사찰은 산속으로 숨어들었으며, 여성 신도들에게 의지하여 명맥을 유지하였다.
불교미술 또한 고려의 멸망과 함께 쇠퇴하였다. 조선 전기의 건축에서는 새로운 건축 양식인 소조와 힐조, 그리고 그 절충양식이 등장하였으나, 중기 이후에는 힐조가 주류를 이루었고 절충양식도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서울 남대문은 전기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정제된 가운데 강건한 느낌을 주며, 후기의 경복궁 건물에서는 두공의 섬세함이 두드러진다.
불교 조각은 초기에는 원나라와 명나라를 직접적으로 모방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극도로 형식화되거나 경직되어 무표정하고 무감정한 형태가 되었다. 반면, 무덤 앞의 석인이나 궁전 앞의 석수 등 비종교적 조각에서는 오히려 소박한 감각을 발견할 수 있다.
회화는 17세기를 경계로 전·후기로 나뉘지만, 정확히는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는 15세기 초부터 16세기 중엽까지로, 화원의 화사가 중심이 되어 송과 원의 화풍을 그대로 모방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북송의 곽희를 모방한 안견이 있으며, 그의 산수화가 대표적이다.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까지의 중기에는 명나라 초기의 원체 및 절파 계통의 북종화가 수입되었으며, 이징 등이 활약하였다. 전체적으로는 중국화 계통이었으나, 이정과 윤두서 등의 작품에서는 한국화의 특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후기는 남종 문인화의 영향이 두드러졌으나, 한편으로 화풍과 주제에서 조선화가 뚜렷해진 시대이기도 하다. 정선은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여 금강산 등의 실경을 묘사한 진경산수화로 유명하며, 김홍도 또한 같은 경향의 대가였다. 강세황은 서양화를 포함한 다양한 화법을 경험적으로 구사한 뛰어난 화가였다.
서예는 고려 시대 안진경과 구양순체에서 원나라 말기의 조자앙체로 변화하였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조선화된, 구조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서체로 평가되며, 예술성이 저하되었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러 김정희가 추사체라 불리는 독자적인 서풍을 개척하여 광채를 띠었으며, 궁녀들을 중심으로 우려한 한글 서체인 궁체가 발전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
도자기는 임진왜란을 경계로 전·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인 15~16세기에는 분청과 백자가 특징적이었다. 상감, 백토도, 철회, 음각, 박지분청 등의 기법으로 장식된 분청청자는 기법적으로 고려청자의 조선화된 형태이며, 기술적으로는 고려 시대의 상감이 조대화하여 분청의 스탬프 기법으로 단순화되었다. 전기의 백자는 명나라 도자기와 비슷한 경질의 특수한 유색을 띠며, 기형도 투박하고 호방하여 고려의 취향과는 전혀 달랐다.
후기의 도자기는 청화백자가 특징적이다. 청화백자는 15세기 중엽부터 제작되었으며, 전기에는 경기 광주의 번천리, 우산리, 도마리 등의 관요에서 구워졌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같은 광주의 금사리로 이전되었고, 18세기 중엽부터는 분원리 관요에서 제작되었다. 그러나 최고급 도자기는 대부분 분원리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외의 공예로는 나전칠기와 목공품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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