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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12

조선 후기 화가 신윤복 신윤복은 1758년에 태어났다. 부친 신한평과 조부 역시 도화서 화원으로, 특히 신한평은 영조와 정조의 어진 제작에 참여했으며 초상화뿐 아니라 산수화와 화조화에 뛰어났다. 신윤복은 집안의 대를 이어 어려서 그림에 입문해 화원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극히 일부만 전해질 뿐 거의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남녀 간의 춘정을 즐겨 그린다는 이유로 도화서에서 쫓겨났다고 전한다.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된다. 그는 풍속화 외에도 남종화풍의 산수와 영모 등에 재능을 보였다. 일찍이 아버지의 화법을 익혔고, 선배 화원이자 당시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김홍도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 2025. 3. 14.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 김홍도는 1745년에 태어났다. 출신 가문은 원래 무반에서 중인으로 전락한 집안이라는 것만 확인되고,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그의 나이 7, 8세 때부터 경기도 안산에 있는 강세황의 집에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어린 시절을 안산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강세황은 당대의 감식가이며 문인화가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로 시작하여 다음에는 직장의 상하 관계로, 나중에는 예술적 동지로 강세황이 세상을 떠나는 1791년, 김홍도의 나이 47세까지 이어졌다. 김홍도는 강세황의 추천으로 이른 나이에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20대 초반에 이미 궁중화원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1773년에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2025. 3. 13.
조선시대 중기 미술의 특징과 대표 작가 조선시대 중기(16세기 후반~17세기 말)는 사회적 변화와 함께 미술의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시기였다.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 등 전란을 겪으면서 국가 경제가 쇠퇴하고 사대부 문화를 중심으로 한 미술이 점차 독자적인 색채를 갖추기 시작했다. 명나라의 영향을 받은 북종화(院體·절파) 계열의 화풍이 유행했으며, 문인화가 등장하면서 조선적인 미술 양식이 점차 형성되었다. 또한 불교미술이 점차 쇠퇴하고 민간에서 종교미술을 계승하는 형태가 나타났다.조선 중기 미술의 주요 특징1. 명나라 화풍의 유입과 북종화의 영향조선 중기에는 명나라 초기의 원체화(院體) 및 절파(浙派) 계통의 북종화가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 이는 주로 사대부층이 중국 문화를 동경하며 새로운 화풍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북종화.. 2025. 3. 13.
조선 초기 화가 안견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조선초기부터 중기까지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산수화에 특히 뛰어났고 초상화·사군자·의장도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재 그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은 몇 점 있으나, 정확히 그의 그림으로 확정된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 안견의 생애 안견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의 본관은 지곡이고, 자는 가도·득수, 호는 현동자·주경이다. 다만 그가 세종 때 도화.. 2025. 3. 13.
조선시대의 미술 조선의 지배자들은 철저한 화화사상으로 본래 중국인의 생활철학이 반영된 유교사상을 신봉하였으나, 한편으로 미술에서는 한국인의 가식 없는 천성을 마음껏 표현하였다. 불교는 국정 운영 방침에 의해 배척당하였고, 사찰은 산속으로 숨어들었으며, 여성 신도들에게 의지하여 명맥을 유지하였다. 불교미술 또한 고려의 멸망과 함께 쇠퇴하였다. 조선 전기의 건축에서는 새로운 건축 양식인 소조와 힐조, 그리고 그 절충양식이 등장하였으나, 중기 이후에는 힐조가 주류를 이루었고 절충양식도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서울 남대문은 전기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정제된 가운데 강건한 느낌을 주며, 후기의 경복궁 건물에서는 두공의 섬세함이 두드러진다.불교 조각은 초기에는 원나라와 명나라를 직접적으로 모방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극도로 형식화되거나.. 2025. 3. 13.
고려 불화의 가치와 의미 고려(918∼1392)는 불교가 국가적인 종교였던 만큼 최고의 기량을 지닌 작가가 불화 제작에 참가했기 때문에 고려 불교의 심오한 사상이 불화에 잘 나타나 있다. 불교가 국가적인 종교였던 고려시대에는 도성인 개경에만도 70여 개 사찰과 수많은 귀족의 원당에 봉안된 불화를 비롯하여 법회와 도량 등 불교의식에 소용된 불화에 이르기까지 상당수의 불화가 제작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고려불화는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조선중기의 임진왜란으로 인해 약탈당하여 대부분 일본에 건너갔다. 현재 고려불화는 140여 점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일본에 있고 우리나라에도 얼마간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불화를 통해 보면 아미타불화·관음보살도·지장보살도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대개 고려 후기인 14세기에 제작된 불화들.. 2025.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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