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조선미술3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 김홍도는 1745년에 태어났다. 출신 가문은 원래 무반에서 중인으로 전락한 집안이라는 것만 확인되고,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그의 나이 7, 8세 때부터 경기도 안산에 있는 강세황의 집에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어린 시절을 안산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강세황은 당대의 감식가이며 문인화가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로 시작하여 다음에는 직장의 상하 관계로, 나중에는 예술적 동지로 강세황이 세상을 떠나는 1791년, 김홍도의 나이 47세까지 이어졌다. 김홍도는 강세황의 추천으로 이른 나이에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 20대 초반에 이미 궁중화원으로 명성을 날렸으며, 1773년에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의 초상을.. 2025. 3. 13. 조선 초기 화가 안견 안견은 조선초기 세종부터 세조때까지 활동한 화가이다. 그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그의 의뢰로 [몽유도원도]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조선초기부터 중기까지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조선화단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산수화에 특히 뛰어났고 초상화·사군자·의장도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무로마치 막부 시기의 수묵화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재 그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은 몇 점 있으나, 정확히 그의 그림으로 확정된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 안견의 생애 안견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의 본관은 지곡이고, 자는 가도·득수, 호는 현동자·주경이다. 다만 그가 세종 때 도화.. 2025. 3. 13. 조선시대의 미술 조선의 지배자들은 철저한 화화사상으로 본래 중국인의 생활철학이 반영된 유교사상을 신봉하였으나, 한편으로 미술에서는 한국인의 가식 없는 천성을 마음껏 표현하였다. 불교는 국정 운영 방침에 의해 배척당하였고, 사찰은 산속으로 숨어들었으며, 여성 신도들에게 의지하여 명맥을 유지하였다. 불교미술 또한 고려의 멸망과 함께 쇠퇴하였다. 조선 전기의 건축에서는 새로운 건축 양식인 소조와 힐조, 그리고 그 절충양식이 등장하였으나, 중기 이후에는 힐조가 주류를 이루었고 절충양식도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서울 남대문은 전기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정제된 가운데 강건한 느낌을 주며, 후기의 경복궁 건물에서는 두공의 섬세함이 두드러진다.불교 조각은 초기에는 원나라와 명나라를 직접적으로 모방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극도로 형식화되거나.. 2025. 3. 13. 이전 1 다음 728x90 반응형